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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공간

천사의 도시, 태국 방콕과
「평행선상의 민주주의」

최난옥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
(nanoak@daum.net)


방콕의 정치사를 이해하려면 랏차담넌 거리를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왕궁과 민주주의 기념탑을 잇는 이 거리는 왕실의 권위와 근대 정치의 변화가 교차해 온 공간이다. 그 중심에 민주주의 기념탑이 서 있다.

뚜이가 여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라디오 소리가 난다.

“집회는 11일에 임시 중단됐습니다. 1992년 5월 9일 국회의장이 9개 정당 대표를 초청해 현존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을 벌인 결과, 모두 4개 항에 걸쳐 헌법 개정을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민주주의 핵심부는 집회를 해산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만약 아무런 성과가 없다면 5월 17일 싸남루엉에서 다시 집회를 갖기로 하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평행선상의 민주주의』는 위의 내용과 관련된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는 것이 마지막 장이며, 태국의 현대 정치사를 살아온 두 노인 뚜이와 여이가 얽힌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연도별로 전개된다. 소설이 다루는 1932년부터 1992년까지의 60년은 바로 이러한 갈등의 역사를 두 인물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이들은 실존 인물들과 서로 얽혀가며 방콕을 비롯하여 태국 전역에 걸쳐 활약한다.
방콕은 태국의 수도이자 왕실과 종교, 정치와 시민사회의 역사가 겹겹이 싸여 있는 도시이다.
왕실의 의례가 펼쳐지는 싸남루엉, 1932년 입헌혁명을 기념하는 민주주의 기념탑, 시민들이 모여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거리와 광장, 에메랄드 불상이 안치된 에메랄드 사원, 룸피니 공원 등등을 찾아볼 수 있다. 국민들은 이생에서 함께 태국 땅을 밟으며 살아가는 최고지도자를 롤 모델로 바라보며 부지런히 공덕을 쌓아서 다음 생을 기약하는 듯하며, 자존감이 상당히 높다.

짜오프라야 강 ⓒ 셔터스톡

왕실의 도시, 방콕

2017년 10월 26일 싸남루엉(Sanam Luang) 광장에서는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국왕(재위 1946~2016)의 화장장례식인 다비식이 거행되었다. 2016년 10월 13일 국왕의 서거 이후 1년여의 애도 기간을 거쳤다.
푸미폰 국왕은 살아생전 태국판 새마을운동인 ‘국왕개발계획’으로 농촌 부흥을 이끌며 국민 사이에서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받을 정도로 지지를 얻었다. 태국 불교는 상좌부불교(Theravada Buddhism)로서 일신의 복을 비는 개인구복 신앙이다. 전생, 현생, 내생을 수없이 윤회하며 해탈이 최종 목표이다. 보시를 가장 큰 공덕 행위로 본다. 생전에 쌓은 보시 행위는 적선 행위로 간주되어 내세에는 보다 나은 삶으로 태어난다고 믿는다. 왕실은 불교 사상과 브라만교의 형식과 의식을 수용했기에 불교와 브라만교 신앙이 융합되어 있다.
태국 최초의 통일 왕국인 쑤코타이 왕국은 13세기에 타이족이 주축이 되어 창건되었다. 랏따나꼬씬(짝끄리, 방콕, 1782~) 왕조의 라마 6세(재위 1910~1925)는 화교가 국내 상권을 장악하자 이민자의 수를 제한하고 국내에서 태어난 화교의 자손은 태국 국적을 취득하게 하는 ‘속지주의’를 추진하고자 하였다. 1925년에 서거한 라마 6세의 뒤를 이은 라마 7세가 본격적으로 법제화하고 실행하여 1927년부터 속지주의가 시행됐다.

에메랄드 불상 ⓒ 셔터스톡

에메랄드 사원(왓 프라깨우) ⓒ 셔터스톡

1939년 피분쏭크람 정부는 국호를 싸얌(Siam)에서 태국(Thailand, 쁘라텟타이)으로 변경하였다. 동남아시아의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태국어를 구사하는 모든 종족으로 구성된 거대한 태국을 구상하고, 국내 화교 및 소수민족들을 태국인으로 귀속시키고자 하였다. ‘타이’는 ‘자유’라는 뜻이다. 현재의 국토 지형은 북쪽과 서쪽이 높고 남쪽과 중앙지대가 낮으며 동쪽은 고원지대가 있다. 지형은 코끼리 머리이거나 자루 달린 도끼 모양이다.
방콕(Bangkok, 방꺽)은 라마 1세(재위 1782~1809)에 의해 건설된 수도이다. 북쪽 산에서 발원하여 대평원을 지나 타이만의 바다를 향해 흐르는 짜오프라야 강둑에 위치하는 지리적 요충지이다. ‘방콕’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방’은 마을이고, ‘꺽’은 빈랑 과수원이므로, 방콕은 ‘빈랑 과수원 마을’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작은 어촌이었다.
방콕의 공식 명칭은 168자의 영문자로 구성되어 세상에서 가장 긴 지명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한다. 그 뜻을 살펴보자.
‘천사의 도시는 대도시, 에메랄드 불상이 안치된 곳, 싸워서 이길 수 없는 난공불락 인드라 신의 도시, 9가지 귀중한 보물이 있는 세상의 왕도, 나라이 신이 거주하는 천국 같은 거대한 왕궁이 있는 행복한 도시, 비슈누 신이 건설하고 인드라 신이 수여한 도시이다.’ 태국인은 이 지명을 줄여서 첫 단어인 ‘천사의 도시’(끄룽텝)라고 즐겨 부른다.
방콕에서 아유타야로 가는 배에서 짜오프라야 강을 바라보니 눈에 띄는 광경이 보였다. 앞에 있는 소형 선박이 줄로 연결된 대형 선박을 이끌고 북쪽을 향해 아주 천천히 운항하고 있었다. 화물을 대량 적재한 대형 선박을 천천히 끌고 가는 소형 선박은 장난감같이 작았다. 느림의 미학이 느껴졌다.

왕궁 ⓒ 셔터스톡

방콕은 원래 ‘동방의 베니스’로 알려진 도시였으나, 많은 수로가 매립되고 그 자리에 도로와 고층빌딩이 들어섰다. 방콕 도로의 교통체증은 유명하다. 수로를 달리는 배를 교통수단으로 삼는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많이 보였다. 배의 모터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다가 갑자기 꺼져서 고장인가 했다. 수로 좌우에 금빛 찬란한 궁, 열린 문을 통해 내부가 훤히 보이는 판잣집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 제자리에 멈춘 것 같았던 배가 궁을 벗어나니 다시 굉음을 내며 신나게 달렸다.
에메랄드 불상은 에메랄드 사원(왓 프라깨우)에 있다. 옥으로 만들어진 높이 약 75cm인 이 불상은 톤부리 왕조(1767~1782) 때에 짝끄리 장군(이후 라마 1세가 됨)이 라오스를 정벌하고 가져온 전리품이다. 여름, 우기, 겨울의 3계절이 바뀔 때마다 국왕이 손수 불상의 가사를 갈아입힌 적도 있다고 한다. 에메랄드 사원 뒤편에는 왕궁(Grand Palace)이 있다. 이곳에서 전통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국립박물관(피핏타판싸탄 행 찻)은 에메랄드 사원에서 북쪽으로 1km 정도 떨어져 있다.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싸남루엉 광장은 에메랄드 사원과 왕궁 앞에 위치한다. 1855년 라마 4세는 왕실 화장터 자리에 공원을 만들어 ‘왕실 정원’(The Royal Garden)이라는 뜻의 ‘싸남루엉’이라 이름 짓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후 왕실 의례뿐 아니라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축제의 장소로 성격이 확장됐다.
이 글의 첫 대목에 등장하는 싸남루엉은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시민들에게도 안락한 휴식과 즐거운 축제의 공간이다. 그러나 1992년 ‘검은 오월’ 당시에는 이 일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모이는 주요 공간이었다. 한 장소에 왕실과 종교, 시민사회의 역사가 포개져 있는 셈이다.

왕실의 공간에서 민주주의의 공간으로

방콕의 정치사를 이해하려면 랏차담넌 거리를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왕궁과 민주주의 기념탑을 잇는 이 거리는 왕실의 권위와 근대 정치의 변화가 교차해 온 공간이다. 그 중심에 민주주의 기념탑이 서 있다.
라마 7세는 전제군주제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고, 1931년 미국 방문 중에 기자회견을 통해 헌법을 도입할 준비가 되어있으며, ‘위에서 아래로의 개혁’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혁의 타이밍을 놓치면서 1932년 6월 24일, 인민당이 쿠데타를 일으켜 입헌군주제를 도입하였다. 이 사건은 흔히 ‘1932년 입헌혁명’이라고 불리지만, 이후 태국의 민주주의가 순탄하게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이 입헌혁명의 결과로 형식상으로는 민주정치제도의 통치 구조가 갖추어졌으나 실제로는 왕과 왕족에서 군과 민간관료로 정권 담당자가 바뀐 군부 쿠데타라는 시각이 있다.
1933년에는 버워라뎃 왕자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버워라뎃 전 국방장관을 주축으로 한 쿠데타군은 1933년 인민당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며 방콕으로 병력을 이동하였으나, 정부군의 반격으로 소탕되었다. 라마 7세는 중립을 지켰지만 정부는 국왕과 왕족이 왕정복고를 위해 버워라뎃 반란을 지원한 것으로 봤다.
민주주의 기념탑(Democracy Monument)은 왕궁으로 이어지는 랏차담넌 거리(Ratchadamnoen Avenue)의 중앙에 위치한다. 1932년의 입헌혁명을 기념하고자 1939년에 건립되었다. 각 기둥의 높이 24m는 1932년 6월 24일 입헌혁명 날짜를 의미한다. 네 개의 기둥은 육군, 해군, 공군, 경찰을 상징한다. 기둥 중심에는 1932년 헌법을 상징하는 책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이것은 철제 구조 위에 놓여 있어 헌법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탑을 중심으로 원형 교차로가 형성되어 있는데, 야간에는 조명이 비춰져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탑은 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싸남루엉 광장 공원 ⓒ 셔터스톡

민주주의 기념탑 ⓒ 셔터스톡

『평행선상의 민주주의』의 작가 윈 리어우와린(Win Lyovarin)은 태국 남부 쏭클라의 핫야이에서 태어나 쭐라롱껀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동남아시아 작가상(S.E.A. Write Award)을 두 차례 수상했으며 태국 국가예술가로도 지정된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다.
그는 1932년에서 1992년까지 60여 년의 태국 역사를 장편소설 『평행선상의 민주주의』(Democracy on Parallel Paths)에 형상화하였다. 태국 역사학자는 역사 왜곡이라며 날짜가 틀렸다고 일일이 지적하기도 했다. 윈은 지적받은 부분을 일일이 수정하고 오해할 만한 부분은 부록에 실제 역사적 사건 기록을 담았다. 태국 문학의 가치 평가는 실제로 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비난도 관심의 표명이기에 고마운 것이다. 버워라뎃 반란군에 가담한 소설 속 전직 군인 출신 여이는 뚜이 경찰에게 입헌혁명이 정정당당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패자는 반란군이 되고 승자는 자동적으로 국가의 주인이 되는 것일 뿐이지 다를 게 뭔가? 만약 1933년의 버워라뎃 쿠데타군이 반란군이라면 1932년의 인민당도 마찬가지로 반란군이야. 자네가 승자의 편에 서 있는가, 패자의 편에 서 있는가만 다를 뿐이지."

"입헌혁명이 발발한 날, 대부분의 군인들은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어. 거의 모두 속아서 왕궁 앞에 집결했지. 일부 부대는 반란이 일어났으니 빨리 따라가라는 말에 속았어. 기마병 부대, 포병 부대 할 것 없이 각 부대마다 도착했고, 해군도 서로 섞인 채 분산 소환되어, 부대장이 명령을 내리기 어렵게 만들었지. 주모자는 거기서 인민당 성명서를 낭독했어. 같은 시각 각 궁의 왕족들은 모두 인질로 잡혀있었어. 이게 민주주의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새로운 체제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으면 자네 말이 맞아. 하지만 이런 식의 성급한 변화라면 정권은 단일 그룹의 손아귀에 떨어질 뿐이야. 그럼 그게 기존 체제와 다를 게 뭔가? 권력이 국왕에서 소수 군부 독재자의 손아귀로 떨어지는 것뿐이잖아. 내 말을 명심하게. 앞으로 20년 후에도 싸얌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엉망진창일 거야. 이렇게 시초가 나빴기 때문이지"

‘검은 오월’과 다시 거리로 나온 시민들

1992년 방콕에서는 또 한 번 민주주의를 둘러싼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 ‘검은 오월’ 사태는 중산층의 민주화 요구 시위이며, 1987년 대한민국의 6월 항쟁이나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와 비슷한 특징이 있다.
1991년 2월 23일 쿠데타로 국가평화유지위원회가 정권을 장악하고 의회해산 및 헌법 중지, 계엄령을 선포하여 찻차이 총리의 문민정부를 전복시켰다. 군부에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새 헌법을 제정하고, 상원 의원과 총리를 임명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에 야당과 학생, 지식인들은 의회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차기 총리는 국민이 선출한 의원이 되어야 한다며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짬렁 전 방콕시장은 쑤찐다 신임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였다. 수십만의 시위 군중은 연일 쑤찐다 퇴진을 외쳤다. 5월 9일에 9개 정당이 안건에 의견을 모았으나 일부 정치인이 비준을 거부했다. 5월 중순부터 군과 시위대의 충돌이 격화됐고, 민주주의 기념탑과 싸남루엉을 비롯한 도심 곳곳이 시위와 진압의 현장이 됐다.

룸피니 공원 ⓒ 셔터스톡

1992년 5월의 태국은 솔로몬 이상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할 정도로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5월 21일 라마 9세 푸미폰 국왕은 짬렁과 쑤찐다를 호출하여 평화협정을 중재했다. 5월 24일 쑤찐다 총리가 사임 성명을 발표하고 망명길에 올랐다. 짬렁은 일체의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쑤찐다와 짬렁 중 어느 한쪽만이 책임질 잘못이 아니라 양쪽이 모두 책임지는 것으로 일단락된 것이다. 두 지도자가 왕실 규범에 따라 푸미폰 국왕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당시 광경은 전파를 타고 각국에 퍼져나갔으며 정파를 초월하는 국왕의 권위를 여실히 보여 주는 장면으로 꼽힌다.
소설 속 여이에게 통차이가 말했다.

“누가 이게 복수가 아니라고 했나요? 이게 국가평화유지위원회를 속여 정치적으로 패배시키는 거지요. 오히려 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겁니다. 만약 아저씨가 상어 한 마리를 죽이려 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미끼를 써서 그놈을 물에서 나오게 유인하는 거지요. 모래사장으로 올라오게 해서 서서히 죽어가게 하는 겁니다. 우리는 손도 대지 않은 겁니다. 이번에 미끼는 ‘권력’이지요.”

통차이는 여이를 여러 번 구해준 은인의 아들이며 20대 청년 국회의원이다. 그의 상관은 부패 혐의로 국가평화유지위원회에 의해 재산을 몰수당한 전력이 있다. 통차이와 깡완은 여이가 사는 동북부 마을 국회의원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사업가 깡완은 자신의 동북부 사업 프로젝트가 정부에 의해 무산되자 스스로 국회의원이 되어 타결하려고 시도했다.
소설은 통차이 측과 깡완 측, 양쪽에 얽혀 있는 내막을 다루어, 정치에 진입하는 젊은 세대와 사업가들의 모습을 통해 권력과 자본, 정치의 관계가 복잡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태국 정치는 또다시 양상을 달리하여 새로운 시기로 진입했다. 국제 사업가의 시기에 누가 더 두려울까. 자기 기관의 이익을 위해 정치에 진입하려는 사업가인가 아니면 정치를 사업 기반으로 이용하는 정치가인가?

흔들리며 나아가는 민주주의, 그 속의 인간과 도시의 역사

1992년 11월 여명에 뚜이와 여이 두 노인이 룸피니 공원 나무의자에 앉아 있다. 역사의 한 장에 ‘잔인한 5월’로 기록된 사건이 일어나고 6개월 후다.

“자네는 태국의 민주주의가 커다란 싸이 나무 같다고 생각지 않나. 권력은 폭풍 같고. 폭풍이 위협적으로 불면 싸이 나무도 심하게 흔들리지. 그래도 어쨌든 이 민주주의 나무는 고난의 세월을 잘 견뎌냈어.”

소설은 첫 장 <암시>에서 룸피니 공원 나무 아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두 노인의 대화에서 앞으로 전개될 파란만장한 삶과 복잡한 태국 정치사를 암시한다.
룸피니 공원(Lumphini Park)의 룸피니는 석가모니의 출생지인 네팔의 룸피니에서 이름을 따왔다. 빠툼완 거리에 있는 공원이다. 광대한 부지에 인공 연못이 있고, 보트를 탈 수 있다. 1925년 라마 6세 때 건설되었다. 남서쪽 입구에는 라마 6세의 동상이 서있다. 네팔의 룸피니 동산은 불교의 성지이다. 석가모니 부처의 탄생지라서 지구촌 순례객이 끊임없이 찾는 곳이다.

참고문헌

  • 김홍구. 2016. 태국문화의 즐거움. 스토리하우스.
  • 최난옥. 2011. 윈 리어우와린의 소설 『평행선상의 민주주의』에 나타난 공감의 역동성. 동남아시아연구 21권, 1호: 185-216.
  • 한국태국학회 편. 태국의 이해. 한국외국어대학교.
  • Thanapol Chadchaidee. 1995. Essays on Thailand. D.K. Today Co., LTD.

저자 소개

최난옥.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

2000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태국 근대 문학의 비교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전공은 비교문학이다. 1991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강사, 2002년 태국 부라파대학교(Burapha University)에서 한국어 교환교수(Exchange Lecturer)로 근무했다. 1988년 태국 쭐라롱껀대학교(Chulalongkorn University) 태국어과에서 펠로우십(Fellowship) 과정과 2002년 태국 쭐라롱껀대학교 비교문학과에서 박사후 과정(Post-Doctor Fellowship) 과정을 마쳤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평행선상의 민주주의』에 나타난 공감의 역동성”(2011), “「랏 엑까텟의 세 가지 세상」을 통해 본 인간의 죄의식과 수치심(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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