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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기후재난 만난 반백년 인프라

최서윤 아시아경제 기자
(sychoi@asiae.co.kr)


「국토」에 수록된 내용은 필자 개인의 견해이며, 국토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지난해 3월 퇴근길 무렵 휴대전화에 뜬 속보 한 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 사거리 한복판에 땅꺼짐(싱크홀)이 발생해 차량과 오토바이가 빠졌다는 소식이었다. 현장 사진 속 뻥 뚫린 검은 구멍은 공포 그 자체였다. 사고 다음 날 30대 오토바이 운전자는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매일 수많은 차와 사람이 오가는 도로 한가운데서 아스팔트가 순식간에 누군가의 일상과 생명을 삼켜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그 사고 이후 무심코 걷는 횡단보도 앞이나 매일 차를 몰고 지나는 교량 아래 어떤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문득 서늘해지곤 한다.

땅은 갑자기 꺼진 것이 아니었다. 그해 12월 조사 결과 직접 원인은 약해진 암반층 붕괴였다. 여기에 지하수위 저하와 노후 하수관 누수도 지반을 더 약하게 만들었다. 사고 지점 인근 하수관은 2022년 조사에서 이미 균열과 이음부 단차가 확인됐다. 경고음은 사고 3년 전부터 울리고 있었지만 보수는 없었다. 서울시는 사고가 난 뒤에야 설치 30년이 넘은 하수관로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1970~1980년대 한꺼번에 깔린 국가 기반시설이 이제 한꺼번에 늙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반백 년을 바라보는 나이다. 겉은 멀쩡해도 속은 다를 수 있다. 폭우와 폭염은 낡은 시설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다. 오래된 하수관은 집중호우를 견디지 못해 깨진다. 교량은 폭염과 폭우가 반복될수록 균열이 벌어지고 철근 부식도 빨라진다. 기후재난은 없던 위험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숨어 있던 작은 결함을 침수와 붕괴로 키운다.

얼마 전 노후 인프라 실태를 취재하며 접했던 전국 지자체 실무자들 고충은 생각보다 훨씬 절박했다. 무너질 듯한 옹벽이나 물 새는 수도관이 한두 곳이 아니지만, 손쓸 예산이 없다고 했다. 인구가 줄어 세금 수입이 적은 지방 소도시는 더 막막했다. 시설을 통째로 바꿀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망가진 곳만 땜질하고 있었다. 일부 지자체는 지방채까지 발행해 급한 불부터 끄고 있었다. 지역별 재정 격차는 벌어지고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인프라는 주민이 바로 체감하는 다른 사업에 밀려 늘 예산 뒷순위였다.

기반시설 보수는 잘할수록 티가 나지 않는다. 낡은 수도관을 교체해도 공사가 끝나면 다시 땅에 묻히고, 교량을 보강해도 출근길 풍경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정된 예산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지자체로서는 표로 돌아오지 않는 시설 정비에 선뜻 돈을 쓰기 어렵다. 그렇다고 살림이 어려운 지역에 안전 책임까지 떠넘길 수는 없다. 각 동네 살림살이에 맞춰 정부가 힘을 보태되, 인구감소지역은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민간 자본과 국부펀드를 적극 끌어들이는 영국이나 미국처럼 국비 지원 외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길은 없는지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위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안 보이니 더 무섭다. 사고가 터진 뒤에야 허겁지겁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일은 이제 그만 볼 때도 됐다. 망가지기 전에 미리 살피고 고치는 게 결국 가장 확실하고 값싼 안전 대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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