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국토안전관리원 기반시설관리실장
(kimbj@kalis.or.kr)
김범준
국토안전관리원 기반시설관리실장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2054년 워싱턴에서는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범인을 체포한다. 사건이 발생한 뒤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사건을 미리 내다보고 막는 것이다. 20여 년 전 개봉한 SF 영화의 상상이지만, 이 영화가 던진 질문은 오늘 우리 기반시설 관리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무너진 뒤에 복구할 것인가, 무너지기 전에 막을 것인가. 2024년 7월 대전 유등교가 집중호우에 내려앉았고, 이듬해 7월에는 세종 광암교가 불어난 강물에 무너졌다. 두 다리 모두 비가 그친 뒤에야 우리는 그 위험을 알았다.
2025년 7월 중순, 단 나흘 사이에 전국에 200~700mm의 비가 쏟아졌다. 충남 서산에서는 시간당 114.9mm의 비가 내려 관측 이래 7월 1시간 최다강수량
기록을 갈아치웠고, 나흘간 누적된 578.3mm는 평년 한 해 강수량의 절반에 가까운 양이었다(기상청 2025). 한 해 내릴 비의 절반이 나흘 만에 쏟아지는, 기록을
갈아치우는 극한강우가 이제 여름마다 어딘가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는 우연한 이변이 아니다. 기온이 오르면 대기가 머금는 수증기의 양이 늘어나고, 한번 쏟아질 때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비가 집중된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역시 기후변화에 따라 과거보다 극단적인 강도의 자연재난이 더 빈번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여름마다 전국 곳곳에서 시간당 강수량과 일 강수량의 관측 기록이 갱신되고 있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기후
관측에서만큼은 씁쓸한 현실이 된 셈이다.
우리의 기반시설은 과거의 관측자료를 토대로 설계되었고, 유지관리 역시 과거의 경험 위에서 이루어져 왔다. 설계빈도라는 개념 자체가 ‘과거가 미래를 말해준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바로 그 전제를 무너뜨리고 있다. 미래의 위험이 과거의 연장선에 있지 않다면, 과거의 경험에 기댄 관리 방식도 유효할 수 없다. 기반시설
관리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 등 현행 안전점검과 진단 체계는 시설물 ‘내부’를 들여다보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균열은 없는지, 부재는 얼마나
노후화되었는지, 내구성은 유지되고 있는지를 평가하여 등급을 매긴다. 이 체계는 지난 수십 년간 시설물 안전을 지켜온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최근 무너진 교량 상당수는
안전등급상 큰 문제가 없던 시설이었다. 붕괴는 균열이나 부재의 손상 같은 내부 결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집중호우로 불어난 하천의 수위, 급류에 쓸려나간 교각 주변의
지반처럼 시설물 밖에서 가해진 힘이 결합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등급의 두 교량이라도 하나는 범람 위험이 큰 하천을 건너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다면, 두 시설의 실제
위험은 결코 같지 않다. 내부 상태 중심의 평가만으로는 이 차이를 읽어낼 수 없다.
2025년 7월 경기 오산에서 10m 높이의 옹벽이 폭우 속에 무너져 아래 도로를 지나던 시민이 목숨을 잃은 사고는 이를 아프게 보여주었다. 이 옹벽은 과거
정밀안전점검에서 양호 등급을 받은 시설이었다. 사고조사 결과가 밝힌 원인은 설계·시공·유지관리에 걸친 내부의 복합적 부실이었고, 앞선 점검에서 지적된 배수 불량도
조치되지 않은 상태였다(국토교통부 2026). 그러나 안에 쌓여 있던 취약함이 사고로 번진 것은 폭우라는 외부의 힘을 만나면서였다. 위험은 시설물 안의 취약함과 밖의
위협이 만나는 지점에서 현실이 된다. 시설물의 상태등급이 양호하다는 것과 극한강우 앞에서도 안전하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며, 점검에서 발견한 위험이 보수로 이어지지
않으면 점검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여기에 노후화가 겹친다. 노후화는 시설물 안의 취약함이 커지는 일이다. 시설물통합정보관리시스템(FMS)의 데이터에 따르면 준공 후 30년이 지난 시설의 비중은 현재 약
23%이며, 2050년에는 약 98%에 이를 전망이다. 안에서는 취약함이 쌓이고 밖에서는 기후위험이 커지는, 두 흐름이 같은 시기에 겹치고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내부
점검은 더 철저해져야 하고, 동시에 시선은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느 시설물이 먼저 위험해지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점검·진단의 시야를 시설물 내부 상태에 더해
시설물을 둘러싼 환경 전체로 넓혀야 한다. 이것이 패러다임 전환의 첫 번째 축, 시선의 전환이다.
시야를 넓히는 수단은 데이터다. 기후변화 시나리오, 하천과 침수 이력, 지반과 지형, 교통량 같은 외부 데이터를 시설물의 제원·점검이력 정보와 결합하면, 개별 시설물이
안고 있는 잠재위험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국제사회가 기후위험 평가에 널리 쓰는 위해성(hazard)·노출성(exposure)·취약성(vulnerability)의
틀을 기반시설 단위에 적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공공부문에서는 이러한 데이터를 융합하여 잠재위험이 높은 시설을 미리 찾아내고 점검 우선순위를 선제적으로 정하려는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
물론 예측은 한 번의 분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점검과 진단, 보수와 보강의 이력이 데이터로 차곡차곡 쌓이고, 기후와 수문 정보가 상시로 결합될 때 예측의 정확도는
높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예측모델의 개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관리 데이터의 품질을 높이고 축적을 제도화하는 일이다. 오늘 기록한 점검 결과 하나가 십 년 뒤 어느
시설물의 붕괴를 막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폭우가 쏟아진 뒤에 현장으로 달려가는 관리가 아니라, 폭우가 오기 전에 데이터가 가리키는 곳을 먼저 살피는 관리다. 한정된 인력과
예산으로 수십만 개의 시설물을 모두 지킬 수는 없다. 그러나 데이터가 위험의 순서를 말해준다면, 우리는 가장 위험한 곳부터 지킬 수 있다. 경험과 직관의 관리에서
데이터와 예측의 관리로 옮겨가는 것, 이것이 패러다임 전환의 두 번째 축, 방식의 전환이다.
위험을 내다보아도 대응할 돈이 없다면 예측은 경고음에 그친다. 재원이 확보되지 않으면 시설 관리는 예산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결국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복구비가
투입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인명피해가 발생한 뒤의 조치는 수습이지만 선제적 투자는 예방이며, 예방은 언제나 수습보다 적은 비용으로 더 큰 효과를 낸다. 국토교통부
추계에 따르면 기반시설 유지관리 비용은 2019년 연 11조 원에서 2050년 52조 원으로 늘어나, 향후 30년간 약 1천조 원이 필요하다(국토교통부 2022). 준공
30년이 지난 시설물의 유지관리 비용은 5년 미만 시설물의 100배가 넘는다(안태준·정준호 의원실 2026). 비용의 파도는 예고되어 있다.
이를 위해 「지속가능한 기반시설 관리 기본법」은 성능개선에 필요한 비용을 미리 적립하는 성능개선 충당금 제도를 두고 있다. 그러나 적립 기준의 미비와 재정 여건 등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적립은 사실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안태준·정준호 의원실 2026). 참고할 만한 경험이 있다. 공동주택의 장기수선충당금은 1978년 도입
초기에는 적립이 부진했지만, 기준을 구체화하고 꾸준히 제도를 다듬은 결과 수조 원 규모의 안전판으로 자리 잡았다. 성능개선 충당금 역시 적립 기준의 구체화, 재원의
다양화, 기금화를 통한 안정적 운용이 뒷받침된다면 기반시설의 미래를 지키는 재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미리 모아 두는 재원으로 옮겨가는 것, 이것이 패러다임 전환의 세
번째 축, 재원의 전환이다. 시선을 넓히고 데이터로 위험을 읽어내도, 고칠 재원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전환은 완성되지 않는다.
영화 속 범죄예측 시스템은 결국 폐기된다. 세 예지자의 불완전한 예지에 기댄 예측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갈 예측은 다르다. 축적된 데이터와 검증된 분석,
그리고 미리 준비된 재원 위에 서 있다면, 예측은 시설물이 무너지기 전에 우리를 현장으로 이끌 것이다.
시선은 시설물의 안에서 밖으로, 방식은 경험에서 데이터로, 재원은 그때그때의 예산에서 계획된 적립으로. 사후 복구에서 사전 예방으로 가는 이 패러다임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일상을 지키기 위한 필수 과제다. 폭우가 쏟아진 뒤에는 이미 늦다. 지금이 바로 그 전환을 시작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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