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
(mkjeong082@krihs.re.kr)
가즈오 이시구로 저
송은경 역

달링턴 나리는 나쁜 분이 아니셨어요. 전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 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
그것이 잘못된 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했노라는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 없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시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
- 『남아 있는 나날』 중 -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직업 연구자로서 일하기 시작한 이후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갔다. 국책연구기관의 특성상 내가 맡은 일의 대부분은 정부 정책을 지원하는
업무였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당시에는 정책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그 전제를 충분히 들여다보기보다는 매일 주어지는 업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맡은 일을 꼼꼼하게 수행하는 것이 연구자로서 전문성과 역량을 갖추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공공의 문제를 다루는 연구자로서 나름의 사명감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눈앞의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질문이 마음에 남기 시작했다. 그 일이 어떤 배경에서 시작되었고,
무엇을 목표로 하며, 어떤 영향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 역시 연구자의 역할이 아닐까.
입사 초반, 이런 생각을 어렴풋이 품고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서재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책 욕심이 많아 수년 전에 사놓고도
읽지 않았던 책이었다. 하루 종일 이성과 논리로 무장된 보고서와 자료를 붙들고 씨름하다 집에 들어오면,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머리는 조금은 비논리적이고 감성적인
이야기만을 간신히 허락했다. 그날 내가 오래도록 책장에 꽂혀 있던 그 소설을 집어 든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소설은 평생 ‘위대한 집사’로서의 품위와 충성을 위해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억눌러 살아온 스티븐스가 노년에 이르러, 그 선택으로 인해 사랑과 삶의 중요한 가능성을
잃었음을 깨닫는 이야기이다. 1956년 영국, 주인공이자 달링턴 홀의 노집사인 스티븐스가 자동차 여행을 떠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여행길에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인 1920~1930년대의 기억을 반복해서 떠올리며 자신의 과거를 되짚는다.
처음에 스티븐스는 자신이 모셨던 달링턴 경을 위대한 인물로 기억하고, 자신 역시 훌륭한 집사로서 살아왔다며 자신의 삶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회상이 거듭될수록 그 믿음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달링턴 경이 나치 독일에 이용되었으며, 자신도 그 판단에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동시에 아버지의 임종보다 당장의 업무를 우선시했던 일, 이성적 호감을 느꼈던 켄턴 양의 마음을 외면했던 일, 유대인 하녀들을 해고하라는 달링턴 경의 부당한 지시에도
아무런 의심 없이 복종했던 일 등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 과정에서 스티븐스는 자신이 품위와 충성이라는 명분 아래 평생 자신의 판단을 타인에게 맡기고, 감정을 표현하고
스스로 선택할 책임마저 포기해 왔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스티븐스는 저택의 은제품이 단순한 식기가 아니라 그 저택의 수준을 외부에 보여주는 공개적인 지표라고 강조한다. 은제품을 얼마나 완벽하게 관리하고 광을 내느냐가 곧 집사의
전문성을 가시적으로 증명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추구했고, 자신의 직업적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이 ‘위대한
집사’의 사명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그는 ‘어떻게 하면 맡은 일을 더 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고민했지만,
자신이 수행하는 일이 어떤 목적과 가치에 연결되어 있는지를 돌아보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전문성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평생 ‘how’에는 누구보다 탁월했지만
‘why’를 판단하는 것은 자신의 역할이 아니라고 여겼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티븐스는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물론 스티븐스가 처했던 제1·2차 세계대전 시기의 역사적 상황과 오늘날 연구자의 현실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내가 이 대목에서 주목한 것은 특정한 정치적
상황이라기보다,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과 그 역할의 의미를 스스로 생각하는 것 사이의 관계였다. 아무리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더라도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는 과정이 빠진다면 전문성은 자칫 주어진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능력에만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스티븐스의 삶은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을 포기한 전문성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문성을 갖춘 연구자로 살아가기 위해 그동안 나는 논문과 보고서를 잘 쓰고, 문헌을 빠짐없이 검토하고, 분석 틀을 정교하게 다듬으며, 글의 논리를 빈틈없이 채우는 일에
매진해 왔다. 직업 연구자가 된 지금도 이러한 일들을 더욱 잘 수행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남아 있는 나날』을 읽으며 전문성에 대해 한 가지 질문을 더
갖게 되었다. 맡은 연구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 연구가 어떤 문제에서 출발했는지, 어떤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누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충분히 돌아보지 못한 적은 없었을까. 돌이켜보면 어느 순간 연구를 위한 보고서가 아니라 보고서를 위한 연구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이 작품에서 읽어낸 문제는 전문성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전문성이 개인의 독립적인 판단을 대신하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스티븐스는 ‘좋은 집사란 무엇인가’라는
직업적 규범을 지나치게 절대화한 나머지,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 판단해야 할 도덕적 문제마저 자신의 영역 밖에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 결과, 목적과 가치에 관한 판단을
주인인 달링턴 경에게 맡긴 채, 자신은 이미 결정된 일을 가장 완벽하게 수행하는 데 몰두했다.
정부 정책을 충실하게 지원하는 것은 국책연구기관 연구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연구자의 역할은 주어진 정책을 보다 정교하게 뒷받침하는 데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책이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전제는 충분히 타당한지, 다른 선택지는 없는지를 검토하고 질문하는 것 역시 연구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문성이란 주어진 문제에 가장 정교한 답을 내놓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우리가 풀고 있는 문제가 적절하게 설정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필요한 경우
조금 다른 질문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해야 한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더 잘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연구자에 머무르지 않고, 그에 앞서 ‘왜 이 연구를 하는가’를 함께 물을 수 있는 연구자로 살아가고 싶다. 맡은 일을
정확하고 성실하게 수행하는 전문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 일이 어떤 목적과 가치에 연결되어 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연구자 말이다. 평생 은쟁반 닦는 일에만
집착하는 연구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정민기 부연구위원은 2021년 영국 셰필드 대학교에서 Town and Regional Planning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국토연구원 도시연구본부 국·공유지연구센터에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유지 정책 및 제도, 국유지 개발과 공공갈등 등이다.
양은모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다음 필자로 나섭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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