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피엘큐파트너스㈜ 대표
(sunyoung.kim@plqpartners.com)
창조적도시재생시리즈 58
서울디자인재단 시민디자인연구소 저
골목이 돌아오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골목이라는 개념이 도시기획과 공간 담론의 핵심으로 다시 소환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도시재생 사업이 벌어진 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 이 시점에서 『디자인, 골목을 잇다』를 다시 꺼내 드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책이 2015년을 전후해 기획·출판될 무렵, ‘골목’은 아직 낭만과 쇠퇴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개발 논리에 밀려 사라져가는 골목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그 질문에 ‘디자인’이라는 언어로 답하려 했던 이 책은 그 시대의 문제의식을 충실하게 담아냈다.
이 책은 ‘디자인을 통한 도시재생’이라는 주제 아래, 동대문구 이문동·마포구 염리동·동대문구 제기동 약전골목·성동구 마장동 축산물시장 등 국내 사례를 통해 커뮤니티, 역사·문화, 산업이라는 세 가지 골목의 가치를 조명한다. 이어 영국 뉴캐슬 그레인저타운, 리버풀 로프워크, 일본 유아사 간장마을, 이탈리아 볼로냐, 홍콩 완차이 블루하우스, 영국 옥스퍼드 비치크로프트로드 등 해외 사례를 폭넓게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성수동 수제화 산업 활성화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각 사례는 풍부한 현장 사진과 함께 서술되어 있어 공간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골목을 단순한 통행로가 아니라 도시 정체성의 단위로 재정의하는 관점이 책 전반에 일관되게 흐른다. 공간기획가의 시선으로 보아도 이 관점은 지금도 유효하며, 오히려 더 절박하게 요청되는 시각이다.
그러나 책이 기획된 이후 10년 사이, 서울의 골목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화했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바로 성수동이다. 이 책이 공들여 기록한 성수동 수제화 산업 활성화 프로젝트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개발, 공동 유통 매장 fromSS 개설, 구두 디자인 공모전 등 종합적인 디자인 지원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수제화 장인의 골목이라는 산업적 정체성을 살리고, 그 위에 디자인이라는 촉매를 더해 지역을 재생하겠다는 기획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성수동은 어떤가. 2024년 한 해에만 성동구(성수)에서 열린 팝업스토어는 전국 총 1,431개 중 28.53%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수제화 장인의 골목 대신, 국내외 2030세대가 인증샷을 위해 찾는 ‘팝업의 성지’가 된 것이다. 임대료는 2023년 한 해에만 33% 이상 올랐고, 30년 넘게 수제화 매장을 운영하던 노포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임대료와 권리금 부담으로 하나둘 골목을 떠나고 있다. 현장의 한 중개인은 ‘성수동은 이제 개인이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이 현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표면적으로 골목은 살아났다. 사람들이 몰리고 경제적 활력이 생겼으며, 도시 브랜드로서의 위상도 높아졌다. 그러나 책이 그토록 공들여 복원하려 했던 수제화 장인의 스토리와 산업 생태계는 오히려 밀려났다. 이것은 성수동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홍대 앞 예술가 골목이 프랜차이즈 거리로, 가로수길이 명품 팝업 거리로 변해간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예술가와 소상공인이 낮은 임대료를 기반으로 문화와 정체성을 만들어내면, 그 자산에 대자본이 유입되면서 공간의 성격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한다. 다만 이것이 꼭 실패라고만 볼 수는 없다. 연남동처럼 주민들의 느긋한 골목 문화와 카페·소품샵의 공존이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문래동처럼 철공소와 예술가들의 생태계가 독특한 형태로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와 서울신용보증재단이 2022년부터 추진하는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사업’은 장충단길, 경춘선숲길, 샤로수길, 용마루길 등 잠재력 있는 골목상권을 선정해 하드웨어·소프트웨어·휴먼웨어를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골목의 자생력을 키우려는 시도다. 골목이 어떤 주체와 어떤 구조를 갖추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사업은 보여주고 있다.
서울 골목의 문제가 과잉 활성화에 따른 정체성 상실이라면, 지방 소도시의 골목이 맞닥뜨린 위기는 활성화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적 소멸이다. 2024년 행정안전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법적 빈집은 13만 4천 호에 달하며, 전남·경북·충남 등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골목이 쇠락하는 것이 아니라 골목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출판된 이후, 지방에서도 다양한 실험이 이어졌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이 제기한 ‘역사·문화·산업을 기반으로 한 골목 재생’의 논리는 지방에서 더욱 절실하게 요청된다. 서울의 약전골목이나 마장동 축산물시장처럼, 지방 소도시의 골목에도 고유한 산업과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군산의 근대 건축 골목, 통영의 나전칠기 장인 골목, 목포의 원도심 골목은 그 자체로 디자인과 문화가 개입할 수 있는 무대다. 이 책의 시각을 지방으로 확장해 적용하는 작업, 그것이 다음 논의가 이어받아야 할 과제다. 공간 소비의 문법이 달라진 지금, 골목 재생에서 디자인의 역할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이 강조한 ‘골목의 물리적 환경 개선’과 ‘산업·문화 정체성 살리기’는 여전히 중요한 축이지만, 여기에 디지털 콘텐츠와의 연결, 체험형 공간 설계, 방문자와 지역 주민이 공존할 수 있는 운영 모델이라는 새로운 차원이 더해져야 한다. 골목은 이제 오프라인 공간인 동시에 온라인에서 먼저 발견되고 공유되는 ‘미디어’이기도 하다.
이 책이 발간된 이후의 변화도 주목해야 한다. 서울의 골목 문제와 지방 소도시의 빈집 문제는 같은 ‘도시 쇠퇴’라는 이름을 공유하지만, 그 변화의 양상은 전혀 다르다. 서울 골목의 위기가 과잉 활성화로 인한 정체성 상실이라면, 지방 소도시의 위기는 활성화 자체가 어려운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다. 책은 주로 서울이라는 맥락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어, 이 격차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도시재생의 다음 세대 담론은 이 두 맥락을 함께 아울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읽혀야 할 이유가 있다. 도시재생을 ‘공사’로만 이해하던 시대에, 골목의 역사·문화·산업이라는 비물리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 책의 문제의식은 선구적이다. 특히 도시재생 현장에 처음 발을 들이는 기획자, 행정가, 디자이너에게는 골목이라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는 앵커 전략, Z세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골목 문화의 문법, 지방 소멸 시대의 빈집 재생과 커뮤니티 설계, 디지털 플랫폼과 오프라인 골목의 결합 방식 등 이 책이 제기한 질문을 확장하는 후속 논의가 필요하다. 골목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그 변화를 앞서 읽는 것이 도시재생 기획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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