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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위의 식탁

차가운 바닷물과 갯벌이 빚어낸 해양 문화의 기록
서해의 위대한 유산, 참홍어

조철민 조철민 재능중학교 지리교사
(hongmcho@hanmail.net)


우리나라에서 삭힌 홍어를 정확히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는 역사 기록만으로 명확히 특정하기 어렵다. 다만 널리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삭힌 홍어의 탄생은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의 거리’와 관련된다. 주요 홍어 산지였던 흑산도에서 잡은 참홍어를 목포나 나주 영산포 등지로 운반하는 데 며칠이 걸렸고, 냉장·냉동 기술이 없던 시절 운송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숙성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홍어’라는 단어는 전라도 영산포의 독특한 발효 향과 깊은 풍미를 떠올리게 한다. 코끝을 ‘탁’ 치고 올라오는 특유의 암모니아 향과 혀끝을 찌르는 알싸하고 강렬한 자극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미식의 영역이다. 하지만 홍어의 서사를 단지 ‘남도의 독특한 향토 발효식품’이라는 좁은 울타리에만 가두어 두기엔, 이 생선이 서해안 전역에 남긴 지리적 흔적과 역사적 층위가 매우 넓고 깊다.

한국의 전통음식 홍어 ⓒ 셔터스톡

홍어 말리는 모습 ⓒ 세화마을협동조합

참홍어와 홍어: 문헌이 증명하는 명칭의 다채로움과 생물학적 신비

국내 도입 시기에 대한 논란

시장에서 마주하는 홍어류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우선 명칭과 생물학적 분류를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가 삭혀 먹는 홍어로 널리 떠올리는 종의 정식 명칭은 ‘참홍어’다. 참홍어와 홍어는 모두 홍어목 홍어과에 속하지만 서로 다른 종이다.
이들은 상어·가오리와 함께 연골어류에 속해 온몸의 뼈가 말랑말랑한 연골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유연한 골격 덕분에 뼈째 씹어 먹는 독특하고 오독오독한 식감이 완성된다. 흔히 일상에서 저렴하게 즐기는 홍어무침이나 가오리찜의 재료는 대개 참홍어가 아니라, 연안에서 잡히는 홍어나 다른 가오리류인 경우가 많다. 참홍어는 몸통이 마름모꼴이고 주둥이 끝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다. 반면 홍어는 몸집이 작고 주둥이 끝이 둥글어 외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다만 ‘홍어’, ‘간재미’, ‘팔랭이’ 등은 지역에 따라 여러 홍어류를 가리키는 방언으로 혼용되어 왔으므로, 이 명칭만으로 종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는 홍어류가 오랫동안 우리나라 서해안 사람들의 삶과 식문화 속에 자리 잡아 왔음을 보여준다. 또한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홍어의 형태와 생태를 자세히 기록하였다. 그는 홍어의 특징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홍어를 즐겨 먹던 식문화까지 소개하며, 홍어가 서해안 지역의 중요한 수산자원이었음을 전하고 있다.
참홍어의 자연 발효 메커니즘은 이들이 가진 독보적인 생존 전략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부레가 없고 바다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참홍어는 바닷물과의 삼투압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혈액과 근육 속에 다량의 요소를 비축하고 있다. 참홍어가 죽은 뒤에는 미생물의 작용으로 요소가 분해되면서 암모니아가 생성된다. 이때 형성되는 강한 알칼리성 환경은 여러 부패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해, 참홍어가 특유의 향과 맛을 내며 숙성되는 데 영향을 준다.

참홍어는 몸길이가 1m 이상으로 자라며, 주둥이가 뾰족하고 몸통이 마름모꼴이다. 홍어는 몸길이가 보통 30~40cm이며, 주둥이 끝이 둥글고 몸집이 작다 (국립수산과학원 2023). ⓒ 국립수산과학원

바다 위 사투: 미끼를 쓸 것인가, 길목을 막을 것인가?

참홍어는 바다 밑바닥의 펄이나 모래 부근에서 생활한다. 서해의 어부들은 오랜 세월 참홍어의 이동 경로와 해역 조건에 맞춰 독창적인 조업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대표적으로 미끼를 사용하는 주낙과 미끼 없이 몸에 걸리게 하는 걸낙 방식이 있다.

(1) 대청도·군산의 주낙 어법 긴 모릿줄에 수천 개의 낚싯바늘을 촘촘히 매달아 바다 밑으로 가라앉히는 어법이다. 이때 대청도와 군산의 어선들은 참홍어가 좋아하는 까나리, 멸치, 오징어 등을 바늘마다 일일이 꿰어 바다로 던진다. 먹이를 찾아 펄 바닥을 이동하던 참홍어가 미끼를 물면 낚아 올리는 전통적인 어법이다(군산시의회 2022).

(2) 흑산도의 걸낙 어법 전통의 강자인 흑산도 어부들은 미끼를 쓰지 않는 걸낙을 활용한다. 긴 줄에 미늘이 없는 낚싯바늘을 촘촘히 달아 참홍어가 자주 지나는 펄 바닥의 길목에 설치하는 방식이다. 바닥을 따라 이동하던 참홍어가 바늘에 걸리면 줄을 걷어 올려 잡는다. 미낏값은 들지 않지만, 참홍어의 이동 길목과 조류를 정확히 읽는 숙련된 어부의 경험이 필요한 어법이다(박종오 2008).

암수의 애달픈 경제학

홍어잡이배가 만선이 되어 위판장으로 돌아올 때, 어민들의 희비를 가르는 큰 요인 중 하나는 ‘암수의 비율’이다. 참홍어는 성별에 따라 크기와 상품성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암컷은 수컷보다 몸집이 크고 살이 두툼해 상품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반면 수컷은 몸집이 상대적으로 작고, 배 쪽에 한 쌍의 교미기(클래스퍼)가 있어 손질 과정에서 제거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경매 시장에서 암컷이 수컷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곤 한다.

지리적 거리감이 탄생시킨 맛의 기적: 삭힌 홍어의 유래와 ‘삼합’

우리나라에서 삭힌 홍어를 정확히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는 역사 기록만으로 명확히 특정하기 어렵다. 다만 널리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삭힌 홍어의 탄생은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의 거리’와 관련된다. 주요 홍어 산지였던 흑산도에서 잡은 참홍어를 목포나 나주 영산포 등지로 운반하는 데 며칠이 걸렸고, 냉장·냉동 기술이 없던 시절 운송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숙성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생선이라면 부패했을 시간이지만, 참홍어는 체내 요소가 암모니아로 분해되면서 강한 알칼리성 환경이 형성되어 독특한 향과 풍미를 갖게 된다. 영산포 사람들이 이렇게 숙성된 홍어를 먹기 시작하면서 남도의 발효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진다. 이 거리가 빚어낸 식문화의 정점이자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조합이 바로 ‘홍어 삼합’이다. 잘 삭아 알싸한 홍어회 한 점에,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도록 푹 삶아낸 부드러운 돼지고기 수육, 그리고 깊은 맛의 묵은지를 한입에 싸 먹는 방식이다. 삼합은 세 재료가 서로의 맛과 향을 보완한다. 돼지고기 수육의 지방과 부드러운 식감은 홍어의 자극적인 향을 누그러뜨리고, 묵은지의 산미와 감칠맛은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한다. 이 향연에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이는 ‘홍탁’이 더해지면,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알싸한 자극 뒤에 찾아오는 구수하고 깊은 감칠맛의 황홀한 조화를 경험할 수 있다.

홍어 삼합 ⓒ 셔터스톡

영산포 홍어거리는 전라남도 나주시 영산포 일대에 조성된 음식거리로, 나주의 대표 향토음식인 삭힌 홍어를 맛볼 수 있는 명소이다. 영산포에 홍어 거리가 형성된 것은 흑산도 홍어의 육상 집산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 한국관광공사

지리적 변화: 회유와 어획량이 바꾼 서해안 홍어 지도

참홍어를 둘러싼 가장 역동적인 이야기는 최근 서해안 수산 지형에서 나타난 주요 산지의 변화다. 여전히 대중의 머릿속에는 ‘홍어=흑산도’라는 공식이 지배적이지만, 최근 수년간의 어획량 통계는 대한민국 참홍어의 생산 지도가 남쪽 중심에서 중부와 북부 서해안으로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제1기: 전통의 흑산도 중심 시대 따라 나주 영산포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삭아 발효되던 시절의 상징이다. 그러나 남획 등으로 자원 감소가 심화되자 참홍어에는 포획·채취 금지 기간과 금지 체장, 총허용어획량(TAC) 제도가 적용됐다. 2023년부터는 TAC 적용 해역이 전남·인천 중심에서 전북을 포함한 서해 전역으로 확대됐다. 흑산도 홍어는 이러한 자원 관리와 산지 브랜드를 바탕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해양수산부 2023).

제2기: 참홍어의 북상과 대청도의 부상 참홍어는 서해에서 이동하는 어종이다. 표지방류조사에서는 흑산도 인근에서 방류한 개체가 북동쪽 어청도 인근까지 이동한 사례가 확인됐다. 이와 함께 자원 회복 정책이 추진되면서 대청도 역시 주요 참홍어 산지로 부상했다(임양재 외 2015; 국립수산과학원 2010).

제3기: 새로운 메카, 군산(어청도)의 급부상 이러한 변화는 서해 중부 해역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전북 군산 어청도 인근 해역이 새로운 참홍어 황금어장으로 떠오른 것이다. 군산 참홍어 생산량은 2019년 224톤에서 2021년 1,417톤으로 늘어, 당시 전국 생산량 3,121톤의 약 45%를 차지했다. 남쪽 바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참홍어가 서해 중부와 북부까지 아우르는 대표 수산자원으로 거듭났음을 보여주는 변화다(군산시의회 2022).

자료: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어업생산동향조사를 활용하여 저자 재작성.

바다와 인간의 지혜가 순환하는 물길

오늘날 군산 어청도나 인천 대청도 앞바다에서 주낙으로 잡아 올린 신선한 참홍어 중 일부는 위판장을 거쳐 목포·나주 등 남도의 전문 숙성 시설로 이동한다. 서해 중·북부 해역에서 자란 참홍어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남도의 오랜 발효·숙성 기술과 만나 대표적인 남도 음식인 ‘삭힌 홍어 삼합’으로 완성되는 셈이다. 결국 참홍어는 어느 한 지역에 박제된 고정된 특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바다의 흐름과 기후 변화에 맞추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자연의 지도이며, 그 변화의 길목을 삶의 지혜와 독창적인 식문화로 승화시킨 서해안 어민들의 위대한 해양문화유산이다.

군산 어청도. 군산 해역에서 홍어가 많이 잡히는 이유는 서해 수온이 상승해 냉수성 어종인 홍어 서식지가 북상한 탓이 크다. 충남 서해안에서 홍어가 많이 잡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군산시


지도출처

  • 국립수산과학원. 2010. 서해 최북단 대청도에서도 참홍어가 잡힌다! 2월 18일, 보도자료.
  • 국립수산과학원. 2023. 홍어(일명 간재미) 생활사, 드디어 밝혀졌다. 6월 7일, 보도자료.
  • 군산시의회. 2022. 제250회 군산시의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 회의록.
  • 박종오. 2008. 홍어잡이 방식의 변천과 조업 유지를 위한 제문제. 한국학연구 28권: 227-254.
  • 임양재, 조현수. 2015. 표지방류조사에 의한 참홍어(Beringraja pulchra)의 이동 및 성장률. 수산해양기술연구 51권, 2호: 227-234.
  •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어업생산동향조사.
  • 해양수산부. 2023. 7월 1일부터 참홍어, 바지락 총허용어획량(TAC) 적용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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