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군모 세화마을 PD
나는 마을만들기나 지역재생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농촌정책을 알지도 못했고, 유휴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마을법인을 운영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하고, 군에서는 병영콘서트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역할을 했던 나는 제주관광공사의 ‘삼춘PD’ 채용공고를 통해 제주와 처음 접하게 되었다. 구좌읍 세화리의
‘삼춘PD’로 채용되어 세화마을에 왔을 때, 나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을 일을 하나씩 배워야 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세화마을은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지 않았다. 세화해변과 세화민속오일시장, 해녀박물관이 있었고, 가까운 곳에는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이 있었다.
제주해녀문화와 제주밭담 같은 세계적인 자원과 당근, 감자, 무 등 대표 농산물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 내부의 현실은 달랐다. 인구는 줄고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마을에서 태어난 아들과 딸들은 공부와 취업을 위해 떠났고, 돌아오고 싶어도 안정적으로
일할 곳이 부족했다.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도 줄었다. 옛날의 공동체를 그대로 되돌릴 수는 없더라도, 주민들이 다시 만나 마을의 미래를 의논하고 함께 활동할 새로운
공간은 필요했다.
내가 세화마을에 왔을 때 주민들은 이미 이 문제를 인식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을 통해 비어 있는 공간을 살리고, 주민들이 자주 모일 수
있는 공간과 마을의 아들과 딸들이 일할 수 있는 법인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시작된 주민들의 움직임에 합류했다. 회의에 참석해 이야기를 듣고, 생소한 사업 구조와 행정용어를 배우며 주민들의 생각을 실제 공간과 사업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2009년 세화마을 종합복지타운 준공식 ⓒ 세화마을협동조합
2015년도에 선정된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78억 원, 자부담 2억 원 등 총 80억 원 사업)의 중요한 대상은 세화마을 종합복지타운이었다.
이곳에는 주민들의 결혼식과 피로연이 열리던 예식장과 피로연장이 있었다. 전문 예식장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누군가 결혼하면 친척과 이웃들이 모였고, 주민들은 함께 음식을
준비하며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하지만 예식장과 피로연장은 오래지 않아 역할을 잃었다. 청년 인구가 줄고 혼인 건수도 급감하면서 이용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때 주민들의 웃음과 축하로 가득했던 공간은
문이 닫힌 채 방치됐고, 결국 유휴공간으로 남았다.
처음에는 낡은 시설을 고치고 새로운 집기를 넣으면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휴공간의 핵심 문제는 건물의 노후화가 아니었다. 누가 이용하고, 누가
운영하며, 사업이 끝난 뒤 발생하는 인건비와 관리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가 더 중요했다. 운영할 사람과 조직이 없다면 많은 예산을 들여 건물을 고쳐도 다시 비게
된다.
세화마을은 종합복지타운을 단순히 리모델링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주민들이 이용하는 공간, 지역의 청년이 일하는 공간, 마을의 상품과 이야기를 보여주는 공간, 방문자가
머무는 공간을 함께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종합복지타운은 주민의 일상과 일자리, 방문자의 체류를 연결하는 질그랭이거점센터로 다시 태어났다.
공간을 오래 유지하려면 마을이 직접 운영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했다. 세화마을은 주민들이 출자하고 참여하는 마을협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다. 주민들에게 협동조합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마을이 카페와 숙박시설을 직접 운영한다는 것이 낯설었고, 주민의 돈을 모아 법인을 만드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마을은 여섯 차례에 걸쳐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법인이 필요한 이유와 출자금의 사용처, 수익 관리방식, 주민의 참여방법을 계속 설명했다. 빠르게 결정하기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민들이 이해하고 동의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 477명의 주민이 약 2억 7천만 원을 출자했다. 이후 조합원은 494명까지 늘어났다.
‘카페477+’라는 이름도 처음 출자한 주민 477명에게서 가져왔다.
주민 출자는 사업비를 마련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주민이 시설의 이용자나 수혜자가 아니라 공간의 주인이자 운영의 책임을 함께 지는 주체가 된 것이다.
이사회와 총회, 감사 등을 통해 사업의 방향과 결과를 공유하고, 건축·디자인·카페·숙박·미래사업 등 분야별 주민 태스크포스를 운영했다. 과정은 느리고 복잡했지만 주민들이
질그랭이거점센터를 ‘우리 마을의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기반이 됐다.
2층 카페477+ 전경 ⓒ 세화마을협동조합
‘질그랭이’는 제주어로 베짱이를 뜻한다. 세화마을은 여기에 ‘잠시 나태해도 좋으니 푹 쉬다 가라’는 의미를 새롭게 담았다. 빠르게 관광지를 둘러보고 떠나기보다 마을에
머물며 사람과 자연, 문화를 경험하길 바라는 뜻이었다.
질그랭이거점센터는 처음부터 관광객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하는 공간이어야 했다.
1층에는 마을사무소를 배치했다. 주민들이 가장 자주 찾는 공간을 1층으로 옮겨 고령 주민의 접근성을 높였다. 주민들은 마을 업무를 보러 왔다가 이웃을 만나고, 센터의
행사와 사업 소식도 접하게 됐다.
2층과 3층에는 카페477+를 조성했다. 주민들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자 방문객에게 세화마을을 소개하는 장소였다. 세화의 당근으로 만든 당근주스와 감자를
활용한 빵, 제주 과일음료 등을 판매하며 지역 농산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알렸다.
4층에는 네 개의 객실을 갖춘 숙박시설 ‘세화밖거리’를 조성했다. 제주 전통주거에서 밖거리는 자녀나 손님이 머무는 공간이다. 세화마을을 찾은 사람을 마을의 손님으로
맞이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마을사무소를 찾은 주민이 카페에 들르고, 카페를 찾은 방문객은 마을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숙박객은 낮에만 세화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과
저녁에도 마을에 머물기 시작했다.
건물을 완성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문을 연 뒤부터 실제 과제가 시작됐다. 카페에서는 상품개발과 재고관리, 직원 채용, 위생관리, 회계와
세금까지 새로운 업무가 이어졌다. ‘마을카페’라는 이름만으로 손님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주민을 위한 공간이라는 공공성을 지키면서도 시설을 지속해서 운영할 수 있는
매출을 만들어야 했다.
숙박 수요가 늘어나면서 센터의 객실만으로는 이용자를 수용하기 어려워졌다. 세화마을은 새로운 숙박시설을 짓는 대신 기존 숙소들과 협력해 ‘마을호텔’을 만들었다. 현재
10개 숙소, 약 48개 객실을 연계해 운영하고 있으며, 협동조합은 예약과 안내를 맡고 숙박비는 참여 숙소에 정산한다.
참여자에게는 당근주스와 감귤과즐, 흑돼지 컵라면, 제주 맥주 등 지역상품을 제공했다. 숙박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상품과 상점을 함께 경험하게 하고, 방문자의
소비가 지역의 숙소와 상권으로 이어지도록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간을 만드는 일보다 매일 문을 열고, 사람을 맞이하며, 지역의 여러 사업자를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는
일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질그랭이거점센터에서 시작한 공유오피스는 이후 바로 옆 숨비빌레파크에 새롭게 조성됐다. 숨비빌레파크는 어촌뉴딜300사업을 통해 해녀 탈의장과 주변 공간을 정비한
복합공간이다. 해녀를 위한 탈의·교육시설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일할 수 있는 공유오피스를 만들었다.
공유오피스를 숨비빌레파크로 확장하면서 워케이션 참여자는 업무공간 안에서도 세화의 바다와 어촌 풍경을 직접 느낄 수 있게 됐다. 질그랭이거점센터와 세화밖거리, 마을호텔,
숨비빌레파크가 연결되면서 업무와 숙박, 지역 경험을 함께 제공하는 체류 구조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기업과 기관을 직접 찾아가 세화마을의 워케이션을 설명하고 참여를 제안했다. 기업이 요구하는 인터넷과 화상회의 환경, 숙소의 청결, 식사와 교통, 응급상황
대응체계를 갖추기 위해 마을의 생활환경도 다시 조사했다.
참여자가 걸어서 이용할 수 있는 범위를 표시한 ‘슬리퍼존’ 지도와 지역 식당을 소개하는 맛집 엽서도 제작했다. 엽서를 가지고 식당을 방문하면 작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상인들과 협력해 참여자의 소비가 마을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했다.
현재는 여러 대기업이 연간 단위로 세화마을 워케이션을 예약하고 있다. 직원들은 일정 기간 공유오피스에서 근무하며 마을의 숙소와 식당, 카페, 상점을 이용한다. 업무를
마친 뒤에는 해녀문화와 다랑쉬오름, 세화의 바다를 경험한다.
참여자 한 명이 4박 5일 동안 머물며 사용하는 금액은 숙박과 식사, 카페, 체험 등을 포함해 약 50만 원이다. 매년 800명 이상의 직장인과 프리랜서가 반복해서
방문하면서 평일과 비수기에도 지역에 새로운 소비가 발생하고 있다.
공유오피스는 단순히 책상과 인터넷을 제공하는 시설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기업의 직원이 마을에 머물고 소비하며 주민과 관계를 맺게 하는 워케이션의 중심공간으로 성장했다.
세화마을은 관광객이 적은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세화해변과 카페를 잠시 이용한 뒤 함덕이나 성산으로 이동했다. 방문객은 많았지만 저녁까지 머물거나 주민과
관계를 맺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워케이션은 이 문제를 방문객 수가 아니라 체류시간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했다.
참여자들은 아침에 마을에서 일어나 공유오피스로 출근하고, 점심과 저녁을 지역 식당에서 먹는다. 일을 마치면 세화해변을 걷거나 카페와 상점을 방문하고, 해녀와 다랑쉬오름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며칠 동안 머무는 사람은 마을의 일상을 경험한다. 자주 가는 식당이 생기고, 카페 직원과 인사를 나누며, 산책 중 같은 주민을 반복해 만난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방문자는 단순한 관광객에서 세화마을과 관계를 맺는 사람으로 변화한다.
LG전자 자회사, 현대 등 여러 기업이 세화마을 워케이션에 참여했다. 한 번 참여한 기업이 다시 예약하거나 참가자가 가족·지인과 세화를 다시 찾는 사례도 늘었다.
세화밖거리의 재방문율도 약 38%로 나타났다.
참여자 의견을 반영해 프로그램도 보완했다. “바다 가까이에서 일했지만 정작 바다를 충분히 느끼지 못했다”, “마을 주민과 만날 기회가 적었다”는 의견을 바탕으로 해녀와
직접 마주 앉는 프로그램, 다랑쉬 웰니스 투어, ‘밤, 바다 살롱’ 등을 운영했다.
해녀 프로그램에는 실제 현역 해녀들이 참여한다. 참가자는 해녀의 작업도구를 보고 물질 경험과 숨비소리, 공동체의 규칙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 해녀는 관광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문화를 전하는 주체가 되고, 프로그램 운영비는 해녀의 소득으로 연결된다.
다랑쉬 웰니스 투어에서는 약 3.5킬로미터를 걸으며 오름의 자연과 마을 이야기를 듣고, 명상과 다도, 요가와 해먹 등을 경험한다. 워케이션이 단순한 원격근무를 넘어
지역을 이해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체류로 확장된 것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녀. 제주 전역 기준 해녀는 2623명(2024년 기준)이며, 세화마을에는 7명의 해녀가 물질을 하고 있다 ⓒ 세화마을협동조합
워케이션 공유오피스 전경 ⓒ 세화마을협동조합
질그랭이거점센터는 주민의 공간과 관광객의 공간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았다.
1층에는 마을 업무를 보기 위한 주민이 찾아오고, 2층 카페에는 주민과 방문객이 함께 앉는다. 4층에서는 워케이션 참여자와 관광객이 생활한다. 바로 옆 숨비빌레파크에서는
기업 직원들이 일하고 해녀들이 자신의 공간을 이용한다.
질그랭이거점센터는 관광객이 주민을 밀어내는 공간이 되어서도 안 됐고, 주민만 이용하는 폐쇄적인 시설에 머물러서도 안 됐다. 주민의 일상을 기본으로 두면서 관광객과
관계인구가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구조가 필요했다.
방문객의 수요는 지역주민의 일자리와 소득으로 이어져야 했다. 숙박은 마을호텔과 연결하고, 식사는 마을의 음식점과 연결했다. 체험에는 해녀와 주민해설사, 프로그램 운영자가
참여했다.
센터 내부의 매출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숙소와 식당, 해녀, 농가, 카페, 상점에 이용자와 일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했다. 질그랭이거점센터는 주민에게는
마을사무소이자 카페, 회의와 일자리의 공간이다.
관광객에게는 세화마을을 이해하는 안내공간이고, 관계인구에게는 며칠 동안 일하고 생활하며 마을과 관계를 맺는
거점이다.
질그랭이거점센터 앞 교류마당도 주민과 방문자가 만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화민속오일시장과 함께 열리는 ‘모모장’ 플리마켓이다. 지역주민과 이주민을
중심으로 약 40팀의 판매자가 참여하고, 한 번 열릴 때마다 약 1,000명의 주민과 관광객이 찾는다. 특히 운영진의 상당수가 세화마을에 정착한 이주민으로 구성돼 있어,
모모장은 원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행사를 만들고 방문객을 맞이하는 공동체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센터 내부가 주민의 일상과 방문자의 체류를 연결한다면, 교류마당은 주민과
상인, 창작자, 관광객이 함께 어울리는 열린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비어 있던 건물을 살리는 데서 출발한 변화가 건물 밖 마당과 마을의 오일시장까지 확장된 것이다.
워케이션 참여자들이 밤바다살롱(맥주파티), 해녀와 함께하는 요가, 싱잉볼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 세화마을협동조합
질그랭이거점센터 앞 교류마당 일대에서 열리는 가요제와 야시장 ⓒ 세화마을협동조합
질그랭이거점센터의 변화는 건물 하나의 활성화로 끝나지 않았다. 공유오피스는 숨비빌레파크로 확장됐고, 숙박은 마을호텔을 통해 마을 안의 민간 숙소와 연결됐다. 해녀문화
프로그램은 해녀탈의장과 해녀박물관, 불턱과 해신당으로 이어졌으며, 웰니스 프로그램은 다랑쉬오름까지 활동 범위를 넓혔다.
워케이션 참여자는 숨비빌레파크에서 일하고, 마을호텔에서 잠을 잔다. 지역 식당에서 밥을 먹고, 해녀를 만나며, 다랑쉬오름을 걷는다. 방문자의 이동과 소비가 특정 시설에
머무르지 않고 마을의 여러 장소와 주민에게 이어진다. 새로운 대형시설 하나가 사람과 수익을 모두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점이 마을 안의 작은 공간과 사업자를
연결해 함께 성장하는 방식이다.
질그랭이거점센터를 운영하며 유휴공간 활용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첫째, 공간보다 운영할 사람과 조직이 먼저 준비돼야 한다. 건물은 예산으로 고칠 수 있지만 매일 문을 열고 관리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한다.
둘째, 다른 지역의 성공사례를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된다. 세화마을에는 주민이 모일 공간과 청년이 일할 조직, 방문자가 오래 머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다. 다른
지역에는 돌봄이나 공동작업, 농산물 가공, 청년주거가 더 필요할 수 있다.
셋째, 공간의 효과가 더 많은 주민에게 이어져야 한다. 센터 자체의 매출뿐 아니라 지역 숙소와 식당, 체험 운영자와 농가에 어떤 효과가 발생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넷째, 주민 동의를 형식적인 절차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업의 목적과 운영 결과를 계속 공유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주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다섯째, 공간의 역할은 운영하면서 계속 바뀌어야 한다. 세화마을도 처음부터 워케이션과 마을호텔, 해녀문화 프로그램을 모두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운영하며 수요를 확인하고
이용자의 의견을 반영해 기능을 확장했다. 질그랭이거점센터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지금도 변화하고 있는 공간이다.
질그랭이거점센터 2층 카페477+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주민들 ⓒ 세화마을협동조합
나는 마을 일을 잘 알고 세화마을에 온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왔을 때 마을은 이미 위기를 느끼고 움직이고 있었다. 주민들이 다시 모일 공간을 만들고, 마을의 아들과 딸들이 돌아와 일할 수 있는 조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 과정에 참여해 주민과 함께 배우고, 공간을 운영하며, 새로운 사업과 사람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질그랭이거점센터의 변화는 한 사람의 성과가 아니다. 마을의 위기를 느낀 주민들이 논의를 시작하고, 477명이 자신의 돈을 출자해 법인을 만들었으며, 비어 있던 공간을 다시 사용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휴공간을 살린다는 것은 낡은 건물을 고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다시 모이고, 함께 일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일이다. 비어 있던 종합복지타운은 주민들이 이용하고 운영하는 질그랭이거점센터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 더 많은 주민의 일과 사업을 연결하고, 관광객과 관계인구가 함께 머무는 복합공간으로 성장했다.
질그랭이거점센터에서 시작된 변화는 숨비빌레파크와 마을호텔, 해녀문화와 다랑쉬오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어 있던 한 공간에서 시작한 일이 이제 세화마을 전체의 사람과 공간, 일과 관계를 연결하고 있다.
세화마을은 2023년 UN Tourism ‘최우수관광마을’로 선정된 이후, 매년 UN Tourism 포럼에 초청받아 세화마을의 우수한 사례와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 세화마을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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