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근 국토안전관리원장

우리나라는 그동안 경제성장과 국민생활의 편익 향상을 위해 도로, 철도, 하천, 댐, 상하수도 등 다양한 기반시설을 빠르게 확충해 왔다. 그러나 고도성장기에 집중적으로 건설된 시설물들이 준공 30년을 넘어서면서 기반시설 노후화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극한강우와 하천범람, 산사태, 도시침수, 폭염 등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 변수가 아닌 상수로 받아들여지고 재정 여건의 변화까지 겹치면서, 기반시설 관리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이번 호에서는 박창근 국토안전관리원장을 만나 ‘많이 짓는 시대에서 잘 관리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화두로, 기후위기 시대 국가 기반시설 안전관리의 방향과 과제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 │ 이종소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 (jslee@krihs.re.kr)
지금 우리가 건너는 다리, 지나는 터널의 상당수는 경제성장이 한창이던 1980~1990년대에 지어졌습니다. 그 시설들 덕분에 국민의 생활이 편리해졌고 국가 경제가
성장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설물들이 지금 시점에서 보면 30년, 40년, 많게는 50년 이상 되었습니다. 최근 붕괴한 서소문 고가차도 역시 오래된 시설입니다. 현재
시설물통합정보시스템(FMS: Facility Management System)에 등록·관리되는 주요 시설물이 약 18만 7천 개인데, 이 가운데 준공 후 30년이 지난
시설이 대략 22%, 4만여 개에 이릅니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그 비중이 51% 수준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도 문제이지만, 10년 뒤 이 노후 시설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더 큰 과제입니다. 여기에 시계가 하나 더 있습니다. 기후의 시계입니다. 시설이 늙어가는 속도와 기후위험이 커지는 속도, 이 두 개의 시계가
동시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 지금 전환점의 본질입니다. 과거에는 시설을 많이 짓는 것이 국가의 과제였다면, 이제는 지어놓은 시설을 안전하게 오래 쓰는 것이 과제입니다.
박창근
결국 관건은 예산입니다. 현행 「기반시설관리법」에는 성능개선충당금 제도가 있습니다. 단순한 유지관리 비용과 달리 시설의 성능을 높이기 위한 재원인데, 충당금을 적립한다는 원칙만 있을 뿐 구체적인 세부 내용이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현재 국토교통부가 국회와 협력해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고, 기초지자체 보통세의 0.5% 정도를 성능개선충당금으로 적립하자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런 제도가 조속히 갖춰져야 제대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노후화, 기후변화, 재정 여건이라는 세 가지 변화 속에서 ‘많이 짓는 시대에서 잘 관리하는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서 있다고 진단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전환은 준비 없이 맞으면 부담이 한꺼번에 몰려오지만, 지금부터 준비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속도입니다. 관리의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느냐, 그것이 향후 10년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안전점검은 시설물 자체를 들여다보는 일이었습니다. 균열이 있는지, 부식이 진행됐는지, 처짐이나 누수는 없는지를 살펴 등급을 매겼습니다. 이 점검은 앞으로도 안전관리의 기본입니다. 다만 기후위기 시대에는 그것만으로 부족합니다.
같은 옹벽이라도 배수가 잘되는 곳과 집중호우 때 물이 몰리는 곳의 위험은 다릅니다. 같은 교량이라도 수위가 자주 오르는 하천 위의 다리와 그렇지 않은 다리의 위험은
다릅니다. 시설의 상태가 같아도 시설이 놓인 자리에 따라 실제 위험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가의 질문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 시설이 얼마나 낡았는가”만이 아니라 “이 시설이 무엇에 노출되어 있는가”까지 물어야 합니다. 집중호우, 하천 범람, 침수,
산사태, 폭염과 폭설 같은 외부 기후요인을 점검항목과 평가기준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고, 국토안전관리원도 이상기후에 대응하는 안전관리 기준의 고도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준과 함께 시기도 바뀌어야 합니다. 기후재난에는 달력이 있습니다. 폭우는 여름에, 폭설은 겨울에 옵니다. 그렇다면 점검도 폭우가 오기 전에 세굴과 배수 취약시설을 먼저
보고, 폭설이 오기 전에 지붕과 캐노피(차양막)를 먼저 봐야 합니다. 정해진 주기에 따른 일괄적인 점검에서, 위험한 시기에 위험한 곳을 먼저 보는 예방적 점검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종소
먼저 오해 하나를 짚고 싶습니다. 시설물이 오래되었다는 것 자체가 곧 위험을 뜻하지 않습니다. 1900년대에 개통된 한강철교는 지금도 열차를 받치고 있습니다. 체계적인
보수·보강 덕분입니다.
진짜 문제는 오래된 시설이 아니라 오래된 ‘기준’입니다. 수십 년 전 설계 당시의 기후와 오늘의 기후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충분했던 배수용량과 여유고가 오늘의
극한강우 앞에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시설은 그대로인데 시설을 둘러싼 위험이 커진 것이지요.
평가의 시선을 시설 밖 환경으로 넓혀야 한다는 말씀은 방금 드렸습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목표를 확실히 정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대응할 것인가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기후변화를 인정하고, 노후 시설물까지 포함해 어떤 기준으로 대응할 것인지 관리 목표를 현실에 맞게 설정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리 전략이 필요합니다.
첫째, 보수·보강 개념의 전환입니다. 지은 당시 수준으로 되돌리는 원상복구가 아니라, 달라진 기후에 맞게 성능을 끌어올리는 성능개선으로 가야 합니다. 과거의 설계기준과
오늘의 기후위험 사이의 간극은 원상복구로는 영원히 메워지지 않습니다. 성능개선만이 그 간극을 메웁니다.
둘째, 우선순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10년 뒤면 준공 30년이 넘는 시설이 절반을 넘어섭니다. 모든 시설을 한꺼번에 손볼 수는 없습니다. 위험이 큰 곳부터 자원을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합니다.
재난 발생 가능성이 예상된다면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위험을 줄이는 완화(mitigation), 즉 구조적 대책과 함께, 기후변화가 상수가 된 시대에 맞춰
생활과 이용 방식을 바꾸는 적응(adaptation), 즉 비구조적 대책을 병행해야 합니다. 구조적 완화와 비구조적 적응을 함께 추진하는 것이 노후 기반시설의 기후위험
대응력을 높이는 기본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위험을 미리 아는 체계, 그리고 미리 준비하는 재원입니다.
미리 알려면 진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건강검진으로 위험요인을 미리 발견하듯, 기반시설도 정기적으로 건강상태를 확인해 어디가 취약한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진단의 재료가 데이터입니다. 정부는 「기반시설관리법」에 따라 전국 기반시설의 정보를 기반시설관리시스템, 이른바 ‘기반터’에 모으고 있습니다.
국토안전관리원은 여기에 기후변화 시나리오, 하천, 지반 같은 외부 데이터를 결합해 잠재위험이 높은 시설을 미리 찾아내는 예측모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비가 그친 뒤에
피해 현장으로 달려가는 관리가 아니라, 비가 오기 전에 위험한 곳을 먼저 찾아가는 관리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다음은 재원입니다. 위험을 알아도 고칠 돈이 없으면 예측은 소용이 없습니다. 「기반시설관리법」이 성능개선 충당금 적립을 의무화했지만, 산정방식과 적립기준 같은 세부
규정이 미비해 제도 도입 6년이 지나도록 적립이 부진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다행히 국토교통부가 적립 활성화를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보통세 수입의 0.5%를 충당금으로 적립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습니다.
공동주택의 장기수선충당금이 그랬듯, 기준이 구체화되면 적립은 자리를 잡습니다.
아는 것과 준비하는 것, 이 둘이 갖춰질 때 비로소 사전예방 관리가 작동합니다.
교량 하나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교량 자체는 도로를 관리하는 기관의 소관이지만, 그 교량이 걸쳐 있는 하천은 다른 기관의 소관입니다. 폭우가 오면 하천의 수위와 유속이
교량의 안전을 좌우하는데, 하천 정보와 교량 정보는 서로 다른 기관의 서로 다른 시스템에 담겨 있습니다.
최근 집중호우로 유실된 교량들이 보여주듯 위험은 연결되어 있는데, 데이터와 관리는 나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협력체계 개선의 초점은 두 가지여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 데이터의 연결입니다. 시설 정보는 기반터에, 하천과 기상 정보는 소관 기관에, 재난 정보는 또 다른 시스템에 흩어져 있습니다. 데이터가 기관의 경계를 넘지 못하면
예측도 그 경계를 넘지 못합니다. 기반터를 허브로 시설·기후·재난 데이터를 연계하는 것이 사전예방 관리의 실질적인 출발점입니다.
둘째, 기준의 정합성입니다. 나뉘어 있는 것은 데이터만이 아닙니다. 시설을 최소한 어느 수준까지 점검하고 보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관리주체마다 제각각이어서, 같은
종류의 시설인데도 누가 관리하느냐에 따라 관리 수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공통기준을 정비해, 어느 지역에 살든 국민이 같은 수준의 안전을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생명안전기본법」의 의미도 중요합니다. 「헌법」
제35조에는 환경권이 규정돼 있지만, 안전권은 별도로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국민이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법률에 담고, 국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국민의 안전을 위해 책무를 다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재난 대응을 사후가 아니라 사전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고,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독립적인 사고조사체계를
두는 취지도 담고 있습니다. 이 법의 의미처럼 각 부처가 자기 영역에 머무르기보다 통합적인 관점에서 재난과 위험을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 시점입니다.
물론 제도와 시스템만으로 칸막이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국토안전관리원은 전국의 관리주체들과 상시 소통 채널을 운영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제도 개선으로 잇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칸막이를 허무는 일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는 데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두 나라를 주목하고 싶습니다. 미국은 2021년 인프라투자법을 통해 1조 달러가 넘는 재원을 노후 인프라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규모도 규모지만, 수년에 걸쳐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을 법으로 확보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특히 이 가운데 500억 달러 이상을 가뭄과 홍수, 산불 같은 기후재난에 견디기 위한 회복탄력성 투자에
배정해, 기후위험 대응을 인프라 투자의 기본 항목으로 못 박았습니다.
일본은 2013년 인프라 장수명화 기본계획 이후 ‘사후 보전에서 예방 보전으로’를 국가 방침으로 정했습니다. 고장난 뒤에 고치는 것보다 미리 관리하는 것이 시설의 수명을
늘리고 장기 비용을 크게 줄인다는 판단이었고,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된 인프라를 관리해 온 일본의 경험을 참고할 대목이 많습니다.
반면교사도 있습니다. 미국 디트로이트입니다. 물론 디트로이트의 쇠락을 기반시설 노후화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인구 감소와 재정 악화가 오래 누적되면 도시가
필수 인프라와 공공서비스를 제때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그것이 다시 도시의 경쟁력과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인구가 줄고
재정이 어려워지는 우리 지방 도시들이 새겨볼 대목입니다.
이 세 사례가 공통으로 말해주는 시사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예방 보전으로의 전환은 빠를수록 이익입니다. 미룰수록 청구서는 커집니다.
둘째, 전환의 전제는 안정적인 재원입니다. 해마다 예산 사정에 따라 출렁이는 투자로는 수십 년을 내다보는 인프라 관리가 어렵습니다.
셋째, 기후위험을 인프라 계획 단계부터 내재화하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회복탄력성을 설계에 담는 것인데, 시설을 다 지은 뒤에 기후 대책을 덧붙이는 것보다 처음부터
반영하는 쪽이 비용도 효과도 앞섭니다.
결국 세 가지는 하나로 모입니다. 미리 보고, 미리 준비하고, 미리 담는 것입니다. 해외 주요국이 앞서 치른 수업료가 있으니, 같은 수업료를 우리가 다시 낼 이유는
없습니다.
기반시설은 평소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수도꼭지를 틀고, 다리를 건너고, 터널을 지나면서 우리는 그 아래의 구조물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기반시설이 보이는 순간은 안타깝게도
문제가 생겼을 때입니다.
저는 국민이 기반시설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잘 관리되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반시설 관리란 결국 ‘보이지 않는 위험을 보이는 비용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로마시대 수로교가 천 년이 넘도록 아치를 지탱하고 있듯이 구조물은 처음부터 튼튼하게 만들고 적절히 유지관리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참사는 부실한 설계와 시공이 얼마나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줬습니다. 고도성장기에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건설된 시설 중에는
당시의 설계기준과 시공 과정의 한계로 잠재적 위험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를 모두 한꺼번에 찾아내기는 어렵지만, FMS에 등록된 주요 시설을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관리해 나가는 것이 우리 기관의 책무입니다. 데이터로 위험을 미리 드러내고, 충당금으로 비용을 미리 준비하고, 성능개선으로 위험을 미리 제거하는 것입니다.
최근 정부 차원에서 초과 세수를 활용하여 미래대응기금을 적립하고 활용방안을 논의하고 있는데, 노후 시설물에 대한 투자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재원에 노후화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반시설의 성능 유지·개선과 장수명화가 반영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재정 여건이 취약한 지방정부가 관리하는 도로와 하천, 저수지는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기반시설은 앞선 세대가 물려준 자산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기후위기라는 전에 없던 도전 앞에서 안전한 기반시설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 그것이
기후위기 시대 기반시설 관리가 지향해야 할 궁극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월간 국토 창간일부터 현재까지 해당 코너의 글들을 한번에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