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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안 실크로드의 꿈

  • 작성일2013-10-11
  • 조회수238
황광웅(건화 회장)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고선지(高仙芝) 장군은 당나라 대군을 이끌고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과 해발 4700m의 얼음산 다르코트령(嶺)을 넘었다. 그는 당에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했던 토번국을 정벌하고 서역 72개국을 복속시켰다. 훗날 고선지 루트를 탐사했던 영국의 고고학자 오렐 스타인은 이렇게 극찬한다. “그의 업적은 한니발과 나폴레옹의 알프스 원정을 능가한다.”  고선지 장군은 누구인가? 그는 고구려의 유민, 즉 한국인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DNA 속에는 대륙에 대한 열망이 깊게 새겨져 있었나 보다.  고선지 장군이 확보하려 했던 서역의 무역 통로는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실크로드(Silk Road)’라고 명명했던 바로 그 길이다. 실크로드는 중국 시안(西安)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거쳐 콘스탄티노플에 이르는 장장 7000㎞의 길이다. 오아시스 루트, 스텝 루트, 남방 바닷길 등 유라시아 대륙을 동서로 연결하는 교역로에 남북로가 추가되면서 거대하고도 촘촘한 교통망을 갖추게 되었다.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실크로드와 둔황전’이 열렸다. 그때 내건 표어는 이렇다. “실크로드는 문명 교류의 길이다. 그 길을 통해 문명과 문물이 전해지고, 발전하고, 사라져갔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실크로드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지난달 6일 박근혜 대통령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유라시아 협력을 강화하는 게 새 정부의 국정과제인데 개인적으로 부산에서 출발해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철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 종단철도(TKR)를 연결하여 한국에서 유럽까지 육로로 달려갈 수 있는 ‘유라시안 실크로드’의 구상을 밝힌 것이다. 사실 이러한 논의는 2000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이후 남북한 철도 연결이 이루어지자 이를 대륙 철도에 연결할 경우 기대되는 경제적 효과에 대한 선행연구가 한창 이루어졌다.  국토연구원 자료(2008년)에 의하면 부산∼유럽을 기준으로 향후 육상 교통망 연계에 따른 편익은 해상 운송에 비해 약 25~35%의 운임 절감과 약 33~42%의 운송 시간 단축이 예상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지엽적인 분석일 수 있다. TKR이 중국 횡단철도(TCR)와 몽골 횡단철도(TMGR) 등과도 연결되고, 우리나라를 관통하는 아시안하이웨이(AH) 11 도로와 공항, 항만시설을 아우르는 통합 교통망이 완성될 경우 그 경제적 파급효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이 교통망은 단순한 물류 이동의 기능을 넘어서서 국가 간 경제회랑(Economic Corridor)의 역할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관점으로 살펴보자. 옛 실크로드의 시발점은 중국 시안이었다. 그러나 그 굵은 지선(支線)은 신라의 수도 경주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당시 장보고 장군이 동북아시아의 무역권을 장악하고 대규모 중계무역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지금 동북아시아 지역은 세계의 중요한 경제블록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 중심축은 어디일까? 대한민국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3시간 비행거리 안에는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가 50여 곳이나 있다고 한다. 또 베이징과 서울, 도쿄로 이어지는 AH 1번 도로는 Z형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정중앙에 서울이 있다. 지정학적 입지의 유리함을 증명하듯 새내기 인천공항은 10년 만에 최고의 허브공항으로 발돋움했다.  우리는 남북 분단 이후 섬나라에 살게 되었다고 보는 이도 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였고 북쪽으로는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으니 섬나라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지난 몇십 년 동안의 경제성장은 해양 시대와 궤를 같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한반도 남쪽의 좁은 땅덩어리에 갇혀서는 성장세를 이어가기가 아주 힘들어졌다. 아시아史의 큰 흐름이 그러했듯이 ‘대륙 지향적인 속성’을 되찾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유라시안 실크로드를 매개로 하는 양 대륙의 경제적 교류와 통합, 이것은 우리나라가 맞이하게 될 새로운 국운 융성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이라고 했다. 물이 웅덩이를 만나면 다 채운 후에야 흐를 수 있는 법이다. 우리에게 북한은 웅덩이다. 상호 존중과 신뢰 프로세스로 그 웅덩이를 채워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대륙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고 유라시안 실크로드의 꿈이 이루어지게 된다. 우현(宇玄) 김민정 시인이 2009년에 경의선 복선전철 개통을 축하하며 읊은 시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유라시아 대륙으로 대동맥을 펼쳐 나갈/ 통일의 꿈 피어나는 가야할 길 시작이다/ 이제 막 심장으로부터 더운 피를 뿜는다// 칼날처럼 변화하는 디지털의 세상에서/ 판문점, 임진각아 너희들도 변해 보렴!/ 경의선 기적소리여, 관통하라, 남과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