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및 이를 위한 사업의 예비타당성 면제 혹은 완화는 주요 화제와 논의의 대상이다. 오래 지속돼온 지역 간의 불균형한 발전을 해소하기 위해 토목 · 건설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한 방향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토건공화국의 재현’이란 비판과 사회적 인프라인 의료, 돌봄, 교육 등을 우선시하는 SOC가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김종구 2019; 김창엽 2019). ‘하드웨어’ 기반 경제효과를 노리는 것은 결국 단기적인 성과이니 진정한 삶의 질 증대를 위해서는 공공성과 공정성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 투자가 필요하고, 이것이 곧 사회경제적 격차 및 차별을 좁힐 수 있는 사람중심 SOC라는 것이다. 필자는 대표적인 사회적 인프라 중 하나인 의료, 그 중에서도 정신건강(mental health) 지원에 대한 필요성과 미국 내 노력들, 그리고 도시(계획)적으로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정신 불건강은 인구의 고용, 교육 등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부담1) 이 되는 만큼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아주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정신건강 지원, 그리고 사회경제적 파급효과의 기대: 뉴욕의 사례
세계보건기구의 정의에 의하면 정신건강은 모든 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시킬 수 있고, 일상 속 스트레스에 대처하고 생산적이고 유익한 삶을 이끌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정서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행복한(well-being) 상태다. 미국 보건복지부 역시 정신건강은 일상생활 및 전반적 삶에 대한 선택, 태도 등에 영향을 미치기에 삶의 모든 단계에 중요하게 적용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고2) 필요 ·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불안장애, 행동장애, 약물사용 및 남용, 인격장애, 자살충동,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정신건강 관련 서비스의 가장 주요한 자금 제공자로, 서비스 제공과 연구 · 혁신을 지원하는 일 외에도 관련 법률 제정, 주정부를 위한 최저기준 지침서 수립, 서비스 체계 및 제공자의 관리·규제, 소비자권리 보호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연방정부와 협력관계인 주정부들은 해당 주의 정신건강 관련 최대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며 연방정부의 최저기준을 확장하여 새롭거나 혁신적인 서비스 및 제공 체계를 마련할 자율권이 있다. 즉 주마다 시행하는 정신건강 시스템, 서비스 종류, 접근가능성 및 용이성3)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정신건강 관련 연구와 정책이 정신의학과 심리학 관점으로 주로 진행됐지만, 최근 연구들은 정신건강에 미치는 사회경제적인 요소들, 아울러 (경제, 교육 등) 불평등과 정신건강의 상관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경제정책 역시 경제적 성장만이 아닌 집단적 · 사회적 복지도 포용해야 정신건강의 불평등 해소를 비롯해서 삶의 질을 동반한 경제력이 향상된다고 주장하고 있다(Macintyre et al 2018). 즉 정신건강을 건강 문제로만 접근하고 개개인의 범위 내에서 해결할 게 아니라 인구학적 측면에서 더 광범위한 사회 정의, 정치적 맥락과 경제상황을 다뤄 사회 불평등의 근본 문제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Lynch 2017). 서구권에서는 구조적인 인종차별주의, 인종적 · 민족적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경제적인 불균형,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을 저평가하고 삶의 질을 ‘희생’하는 성과주의, 성장주의, 개인주의적 정책 등을 근본 문제로 보고 있으며(Macintyre et al 2018), 더 나아가 미국에서는 정신건강 지원에 있어서 단절 · 분열된 연방-주정부 파트너십, 거시적 접근방법의 부족, 정신건강 문제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의료보험 혜택의 부재 등을 문제로 꼽고 있다(MHA 2016).
정신건강에 대한 통합적 · 거시적 접근법에 열성적인 도시 중 하나는 뉴욕이다. 뉴욕주민 5명 중 1명은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다는 통계를 기반으로 드블라지오 뉴욕시장의 부인 셜레인 맥크레이가 2014년에 론칭한 뉴욕정부 산하 Thrive NYC는 초기 진단/예방, 정신건강에 대한 편견 해소, 개별/분열된 서비스들을 통합시키거나 파트너십을 강화해 서비스 접근을 한층 용이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표 1> 참조).
<표 1> ThriveNYC 내 세부 계획 및 주도 기관들
자료: ThriveNYC.
|
구조적인 불평등 문제를 직시해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격차를 조기에 좁히고 정신건강 문제도 예방하기 위한 또 다른 사례로 커뮤니티스쿨(Community Schools)4) 모델을 예로 들 수 있다. 지역사회 및 지역형 비영리 단체 등과의 협력관계를 통해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교육뿐만 아니라 의료, 상담, 가족 지원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며, 이는 정신건강도 포함된다(McDaniels 2018; Macintyre 2018). 이 모델을 핵심적으로 이끄는 뉴욕에는 258개의 커뮤니티스쿨이 운영 중이다. 각 학교는 연계단체들과 함께 그 지역사회의 인구학적, 사회경제적 특징 등을 고려해 학생 인구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와 교육접근법을 고안·제공한다. 커뮤니티스쿨에는 그 학군에 있는 지역기반 정신건강 제공자들이 학생들에게 상담뿐만 아니라 위기상황 시 개입 및 지원도 한다. 최근에는 정신건강에 대한 조기 인식 및 오명 해소의 중요성을 반영하듯 커뮤니티스쿨뿐만 아니라 뉴욕주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정신건강이 포함되었다(DiGiulio 2018).
물론 난관들도 있다. 론칭한 지 5년째인 ThriveNYC는 무려 10억 달러의 예산을 사용한 걸로 추정되고 있지만, 뉴욕의 정신건강 문제를 위한 실질적인 변화와 사업 성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남성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발생해 ThriveNYC가 (오래 제기되어 온) 정신건강 인식 개선을 통한 경찰 개혁에 실패했다는 시민단체와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으며 (Attanasio & Jaeger 2019), 전반적인 예산 사용에 대한 공개가 촉구되고 있다. 커뮤니티스쿨들의 경우 저소득층 학생들의 성적 향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성과’를 더욱 효율적으로 내기 위해 정신건강을 비롯한 사회적 서비스 제공에 대한 우선 순위/예산 재분배를 고민하고 있다(Kirp 2019). 사회의 건강한 번창(thriving)은 긴 호흡으로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겠지만, 관련 사업예산의 투명한 사용/공개, 삶의 질 개선에 대한 다각화된 해석과 평가, 통합적·거시적 접근에 대한 지역사회와의 지속적인 논의의 장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시사점: 정신건강과 도시(계획)의 관계
인구의 정신 불건강(그리고 정신건강에 있어서의 불평등)이 사회경제적인 불평등 문제를 거울처럼 비추고, 두 분야를 분리해서 생각할 문제가 아님을 미국의 사례를 통해 소개해봤다. 정신건강은 도시(계획)적으로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신중한 고려를 거치지 않은 도시개발로 인한 환경 · 소음 · 안전 문제 등이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연구들은 물론 있으나 정신건강을 비롯한 우울증 등 정신 불건강을 유발하는(depressogenic) 건조 환경에 대한 도시계획가의 인식은 아직도 낮다(Kirk 2016; Bryne 2017). 신체적 건강이 건축 및 개발의 표준정책이 되고 있는 것처럼 정신건강도 이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Kirk 2016). 정신건강을 고려한 도시계획 제안에는 녹지공간 조성, 사회적 공간 마련과 같은 ‘장소형’ 제안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지역사회 내 사회적 관계망과 생태계를 고려하고 사회적 약자 및 실 점유자들이 원하는 삶의 질이란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는 인본주의적(humanistic)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누구나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필요한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음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정신 불건강을 야기하는 시설기반, 성장기반 정책과 구조적 불평등을 되돌아보는 것이 ‘살기 좋은(livable)’ 사회를 위한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